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망가진 모습으로 한번씩 우리집 장롱위에 소환되고
나는 그사람들의 팔을 잡아 끌어내어 바닥에 내려주면
잠시의 소란을 피우곤 사라지는 그런.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망가진 모습으로 한번씩 우리집 장롱위에 소환되고
나는 그사람들의 팔을 잡아 끌어내어 바닥에 내려주면
잠시의 소란을 피우곤 사라지는 그런.
있다 분명
우리집 어딘가에 블랙홀이 있다
라면을 끓이려 봉지를 열었을때 튀어나온 면발 조각이 눈씻고 찾아봐도 안보이고
빨아두었던 치마 두어개정도가 난데모르게 사라졌다.
게다가 요즘엔 밖에서 한참 생각하다 온 내용들이 집에 오면 까맣게 잊혀진다.
생각까지 잡아삼키는 어마무시한 녀석임이 틀림없다.
어딘가 있다.
일하는 카페의 카운터 전구 하나가 꺼진채 몇 주 혹은 몇 달인지 모를 시간동안 방치되었었다
조명이 어디 그 하나뿐이랴, 이미 그 주변에 여러개가 더 있지만 딱 그 하나가 꺼지니 처음엔 미세한 어둑함이
못내 어색했고 그다음 얼마동안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둠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섭게 적응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오늘 오후,
건물의 관리소장님 부탁으로 전기검사를 나온 아저씨께서 그 전구를 갈아주셨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건 전구가 나간게 아니고 그동안 잘못끼워져 있던거란다.
꺼내어 다시 결에 맞춰 쓱쓱 돌리니 불이 탁! 들어왔다.
눈이 쨍하게 아팠다. 갑자기 정수리부터 두통이 느껴졌다.
분명 예전엔 익숙한 불빛이었는데 그사이 그 빛 없이도 평온함을 유지했던 나는, 이제 그 불빛이 못내 불편하다.
게다가 카페 실내와 유리창밖이 더욱 어둡게 대비되어 느껴진다.
세상의 스포트라이트가 다 이곳에 모인 느낌.
무대위에 혼자 서 모노드라마를 이끌어 나가는 배우가 이런 마음일까.
눈이 쨍하게 아프고 정수리에 두통이 오고 주목받는 기분에 몹시 마음이 불편하지만
예전 조명이 고장나기 전에는 전혀없던 증상들.
작은 변화라도, 잠깐의 적응이었다해도
사람이 참, 이리 쉽게 변한다.
아주 묘한 꿈들을 꾸었어
꿈에 하경과 하경의 세언니들이 나왔고 (실제와 다르게!)
나는 그들과 동행하며 어른스럽고 재미난 대화들을 나눴는데 그 순간들이 너무 신나서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였고!
창밖엔 바다와 하늘이 파스텔 톤으로 물들어있었는데
그것들이 아련하게 아름답고 슬퍼서 (일본 만화에 나오는 장면같다고 꿈속에서 생각...)
몸을 웅크리고 엎드려서 한참을 바라보았고!
종이로 된 자료들을 모아두는 파일북 안에 피아노 악보가 한장 들어있었는데
내가 되게 수줍게 사람들이 없을때만 그 악보를 꺼내 피아노를 쳤는데
그 수준은 이제 막 양손으로 연주하는 아이와 같았지만 몹시 듣기 좋았고!
아! 게다가 그 파일북엔 우주와 은하의 매우 큰 사진들이 접혀서 보관돼 있었고!
다 꿈이었지만 깨고나서 다시 잠들고 싶을 만큼 재미있었어
지난 토요일 전국각지에서 모인 청소년들이 탑골공원에 단단하게 모여앉아 시국선언을 하는 사진을 보았다. 명치 안쪽에서부터 뚫고나오는 시원한 쾌감과 동시에 어딘지 모르게 간지럽고 괴로운 감정이 뒤섞였다. 싱싱한 젊음이 치고 들어오는 모습은 두려웠고 상상이상으로 감동이었다. 그래 감동이면서도 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더이상 싱싱한 청춘이 아니기에 꿈을 먹고 사는 소녀가 아니기에.
이제는 머지않은 시간 탑골공원의 어딘가가 내 노년의 자리라서...
그것이 과거 지나온 시간보다 더 가까이 있어서...
펄럭이는 깃발의 청소년들이 대견하고 장하면서도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상징성에 대해서 더할나위없이 공감하면서도 내밀한 진심 어딘가에선 나 또한 밀리고 밀려 당연하다 생각했던 소소한 권리를 박탈당한채 허망하게 남겨지는 노인이 된 비참한 기분.
내 후대의 젊음으로부터 밀려나 남겨지지 않도록.
그들의 시대적 가치와 사상을 존중해 줄 수 있는 할머니가 되어야겠다.
같은 방향을 보고 앉아 한목소리로 정의를 논할 수 있도록.
아니 그들이 거리에 나와 소리지르지 않아도 바르게 정비된 사회속을 유영할 수 있도록
어른의 책임감으로 현시국에 대한 공부와 비판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분노를 부끄러워말아야지. 누구보다 당당하게 비판해야지..
나의 분노가 다음세대와 나를 공존하게 해 줄 끈이 될것이니까.
묘한 날이다.
사람소식이 쏟아져 들어온다.
*
사나에게 페이스북으로 메세지가 와서 잠시 통화를 했다
나메 언니가 달려와 전화를 넘겨받았고
다 잊은 아랍어를 더듬거리며 통화를 마쳤다.
울컥하는 묵직한 그리움때문에 힘들었다.
*
요르단 가족들과 통화를 마치고 목록을 살펴보니
뽀삐에게 오래전에 와 있던 쪽지가 있어 연락을 했다
17개월된 딸이 있다고 한다.
뽀삐의 결혼식에 가던 날, 버스가 꽉 막혀 움직이지 않아
굽이 높던 앵글부츠를 신고 하염없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이 또한 그리운 사람.
*
미아에게 온 메세지도 읽었다.
10년 전 라오스를 여행하다 만났던
치기어린 청춘의 시절을 보낼 때 나의 롤모델이었던
유쾌하고 아름다운데다 지적이기까지한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돌아오는 봄에 출산을 하고 모로코에서 한두해 살거라고 한다.
손님방이 있으니 놀러오라 한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행복하게 잘 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