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삶도 있구나.
이런 일도 있구나.
그럴 수 있어.
뭐 어때.
다 지나간다.
충분히 잘 했어.
이정도면 나쁘지 않아.
그게 누구였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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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삶도 있구나.
이런 일도 있구나.
그럴 수 있어.
뭐 어때.
다 지나간다.
충분히 잘 했어.
이정도면 나쁘지 않아.
그게 누구였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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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주 가벼운 눈발
너무 가벼워서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휘 휘 이동하는 그런 눈송이
그것들이 쌓여 세상을 채워 나가는걸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눈송이 하나도 저리 열심히 사는데,
아이를 등원시키고 소파에 누워 김훈의 하얼빈을 읽다가 설핏 잠이 들었다.
난 덜 치열한 삶인가.
한동안 다니던 뒷산 등산을 못간지 한달이 되었다.
실종자가 있기 때문에.
무엇이 두려운가.
한달 가까이 지난 지금 그곳 거기 살아있지 않은 누군가가 있다는게 두렵다.
산을 오를수가 없다.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인채 거품 가득한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동그랗게 굴리며 천천히 오랫동안 머리를 감았다.
얼굴을 디밀고 사는 것이 벅차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숙이고 또 숙이고 싶어서
오랫동안 문질문질.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오래.
11월이 어느덧 중순까지 오다니.
말도 안된다.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됐다.
아이가 아팠고 시간을 잊었고 정신차리니 낙엽이 쌓여있다
이렇게 허락없이 시간이 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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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새벽녘
내가 뒤척이는 소리에 깬 아기 봄이 제법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손잡고 자자"
고사리 손과 깍지를 끼고 웃었다.
사랑스러운 내 딸
우리 좋은 꿈에서 만나 -
봄을 등원시키고 어린이집 뒤편에 있는 공원을 한바퀴씩 돌다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바로 옆 도서관에서 새로 들어온 신간을 탐색하다 간간이 빌려오는게 일과가 되었다.
대략 6시간 정도...
봄이 먹을 반찬이나 국을 끓이는 일을 제외하면 제법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오늘은 바람이 조금 차가워서 근처 카페에 들어갔는데
언제지, 아무튼 많이 어릴때 엄청나게 몰입해서 읽었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목말고는 아무 기억도 안나던 그 책.
얼마전 구입해 놓고 짬날 때마다 반 정도를 읽어두었던 그 책을 오늘이야말로 끝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부서진 사월'
알바니아 북부 고산지대에서 그들의 명예법인 카눈에 따라 살인을 통한 복수가 반복되는 이야기로
가족(오직 남성)에 대한 복수를 치르고 나면
이를 행한 자가 다시 복수의 대상이 되어 삶과 죽음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하게 된다.
원치않는 살인을 하고 법규에 따라 의식을 치르고
한정된 휴전의 시간 동안의 고독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그조르그의 시간을 쫒아가며 다양한 화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채워진다.
마침내 휴전의 시간이 끝나고 상대의 총알에 고꾸라지며 그가 마지막으로 대면한건
놀랍게도 '자기 자신이 저질렀던 살인'이었다는걸 깨달으며 그조르그의 생은 빚을 잃는다.
이스마엘 카다레의 필력은 진득하고 무겁다.
그의 텍스트가 놓인 주변 공기의 밀도까지 촘촘한 느낌.
이 느낌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던거 같다.
얼마전 한동안 좋아했던 어떤 일본작가의 책을 읽다가 절망하며 덮어버린 일이 있는데
그토록 여운도 감동도 없는 아.. 재미도 없었다 맞다.
한없이 가벼운 그 문체에 그간 의미를 두었다는 생각에 수치심이 올라와서였다.
이일을 있은 후 부서진 사월을 다시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들에 대한 인류애가 충전된 기분이다.
이번 주말엔 그의 다른 책들을 주문할 예정이다.
한시가 넘었네.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