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 계속 불안하긴 했지만 유독 이틀동안 상태가 무척 안좋았다.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도 겪고 모든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싶은 충동에 미친듯이 시달렸다.
세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고 예전부터 고치고 싶다고 생각한 내 정신 문제가
미치도록 원망스러웠다.
어제 하루 꼬박 내내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듯 힘들고 아팠는데 남편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오분에 한번씩 눈물이 나고 임신중 우울증에 대해 하루종일 검색을 하고 이게 호르몬 때문이다라고 되뇌였지만
그 인정이 쉽나. 다 내잘못 같지. 다 내문제 같지.
하루종일 죽을힘으로 스스로와 싸운 후 잠자리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편과 함께 내 휴대폰 사진들을 봤다.
함께 갔던 까페, 엄마와 조카들 사진, 예전에 살았던 조그만 빌라, 만들어 먹었던 음식들,
그리고 지난 겨울 다녀온 남미 여행 사진.
혼자 한달이나 다녀온 여행이었는데 남편에게 사진도 제대로 보여준적이 없다는 사실을 일년만에 알았다.
잠깐 경유했던 멕시코시티, 페루의 쿠스코, 또 마추픽추를 가기위해 3박4일동안 했던 트래킹,
세상에서 제일 맑았던 69빙하호수, 와라즈에서 비박으로 즐겼던 산트크루즈 3박4일 트래킹, 티티카카 호수,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의 일출과 별사진, 혼자 정말 무서웠던 라파즈의 버스터미널...
남편은 무척 재밌게 내 여행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다음엔 꼭 함께 가자고 했다.
우리의 앞으로가 기대된다며, 나와 함께라서 설렌다고. 행복하다고.
죽고싶을 만큼 괴로운 충동들과 싸운 하루가 무색하게도
나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삶이 기대된다고 말하는 해맑은 남편덕분에
그간의 우울이 약간은 씻겨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제는 오랜만에 따뜻한 잠을 잤다.
평온했다.
임신중 우울증세들을 검색하다보니 대부분은 남편과 가까운 사람에게 알리고 이해받고 배려받으라는 조언이 많았다.
나도 안다. 임신과 출산은 우리 부부 공동의 몫이니까.
하지만 의심이 들었다.
이미 어릴때부터 가지고 있던 기질이 어두운 편인데 이게 정말 호르몬때문인지
지금까지 그러했듯 간헐적 발병같은 증세인지. 이게 정말 우리의 몫인지, 나의 문제인지.
더불어 단순하고 긍정적인 남편이 내 상태를 알게되면 함께 우울해질까봐 더 두려웠다.
모르던 세계의 포문을 열어버리는 꼴이 될까봐. 평생 몰라도 되는 감정이 아닐까.
전전긍긍 내 눈치를 보고 나를 바라보는 눈이 걱정으로 점철된다면 그것은 더 못견딜 일이다.
그는 그저 해맑고 애교 많고 사랑을 표현해 주고 많이 웃어주고... 그래서 내가 버틸수 있고.
어젯밤에도 안겨서 정말 서럽게 울고 싶었던 감정을 잘 참아내고
여행이야기를 나누다가 잔 건 잘한거 같다. 아침이 되니 더욱 확신이 든다.
오늘은 어디 멀리 외출을 해야겠다.
조금만 더 멀리 나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