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사진이 필요했다.
18년 된 묵은 주민등록증도 갱신해야 했고
힘들게 취득했던 피부관리사 미용사 면허증도 신청해야 했다.
게으름이 너무 길었다.
도로 건너 엄마 집으로 가는 길에 작은 갤러리가 하나 있는데
언제부턴가 벽에 쓰여있던
증명사진 만 원,
여권사진 만 원.
동네 사진관보다 저렴한 가격에 혹해서 화장을 하고 만 원짜리를 챙겨 길을 나섰다.
엄마도 마침 주민증을 갱신한다 해서 사진을 찍는다 하셨다. 그럼 우리 거기서 만나.
문을 열고 들어선 갤러리는 생각보다 좁았는데 건물 특유의 묵은 냄새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서점에 들어가 있을 때처럼 안정된 서늘하고 공기.
8점의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고등학교 사진과 학생들이 찍은 사진이라고.
아름답고 반짝이고 재치 있는 사진들.
건물을 촬영해서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그래픽 편집을 한 후 인화했는데
흡사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만화경을 재현한듯했다. 질리지가 않았다.
그 중 두 점을 치워 흰 벽을 만들고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반사판도 커다란 조명도 없이 갤러리 천장의 조명들을 한 곳으로 모아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먼저, 그다음은 나.
작가님께서는 우리 두 모녀의 사진도 한 컷 찍어주셨는데 몹시 마음이 들떴다.
나는 자라면서 한 번도 가족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다.
디카나 폰카로 찍은 그런 가족과의 사진 말고 -
그러니까 누군가가 의자에 앉고 누군가는 그 어깨에 손을 얹는 구도로 찍은 단정하고 정적인 사진.
만 원짜리 증명사진을 찍으러 간 건데 얼떨결에 엄마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고 이 순간을 찍으려니 울컥했다.
클래식한 뒷배경에 엔티크 한 의자에 앉아 남기는 사진도 아닌데,
그냥 흰 벽 앞 조그만 나무의자에 앉은 엄마와 사진을 한 장 찍었을 뿐인데.
화려한 액자에 뽑아 넣을 것도 아니고 휴대폰으로 전송받기로 한 것뿐인데.
우리 가족 여섯 명은 왜 모두가 살아있을 때 사진 한 장 남길 생각도 못했을까.
성장도 마음도 가난했던 시기다.
당연하게 먹고 살기에 바빴다하지만 남겨진 아쉬움의 크기가 너무 크다.
이젠 미루지말고 가족사진을 제대로 남기러 가야지...
엄마가 더 하얀할머니가 되기 전에, 우리 자매들에게 굵은 주름이 생기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