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중간 경유지인 멕시코 공항 라운지.
드디어 마지막 장을 넘긴 열한 계단.
참 고마웠다 채사장님아! 한달 내내-
예전 구례의 지인집에 잠시 얹혀 지낼 무렵 체게바라를 선망하던 그가 혁명과 자유를 동시에 부르짖으며 술취한 저녁이면 어김없이 틀어주던 소사의 목소리인데. 이번은 사뭇 다르다. 몹시 진하다. 아마도 당신을 통해 그녀의 인생을 엿보았기 때문일까.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
볼리비아 국경의 지루한 입출국 심사를 기다리면서,
장시간의 야간버스에서 잠이 안올 때,
아무것에도 누구에게도 섞이고 싶지 기분일 때,
혼자 와라즈 호스텔 옥상에서 설산을 마주보고 맥주를 마실 때.
여행 중 8할을 혼자 보낸 고독한 시간속에서 당신만큼 특별한 친구가 없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특히 여덞번째 계단을 앞두고 병실에 누운 당신 곁에 죽은 동료들이 누워있던 그 상상은 나도 늘 하던 것이라-
내 상상속 다혜도 영안실에서 보았던 꿰매진 얼굴로 늘 어두운 내 방문앞을 지키고 있었기에. 그 서늘한 공포와 죄책감을 당신도 가지고 있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났다.
삶이 내게 고통을 던져줄 때 시간을 죽이고 버티기만 했던게 결국은 내 선택이었다는걸,
담담하고도 가볍게 일러주어 고맙습니다.
이제 하루를 더 보내고 집에 도착하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따뜻한 음식을 조금 먹은 뒤 당신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읽어보겠다. 그 계단에 내 발도 용기있게 내딛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