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어둑해지고도 한참이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다.
두껍고 낡은 외투를 걸친 사람들이 말없이 드문드문 앉아있는 밤기차.
베를린의 시린 겨울 이야기들이 단편으로 차곡히 들어있는 공지영작가의 책을 읽었다.
서너개의 에피소드를 막 읽었을때 정전이 됐다.
기차안은 컴컴했고, 조용했다.
엠피쓰리에서 나오는 캐스커의 음악만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
창밖으로 손톱달과 쏟아질 듯 많은 별들이 보이고, 잠시 고모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지난 여름, 가까운 베를린으로 오지 않고 굳이 한국으로 휴가를 갔냐며
섭섭해하던 전화기 너머의 그 목소리.
외로운 타향에서 두 아들을 키우며 머리가 하얗게 세고 있을 나의 고모
7년 전 출간된 그 책을 보고나서야 지난번 고모의 목소리가 담고 있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책속의 그 사람들처럼, 가끔은 고모의 뼈도 시렸겠지.
해가 좀처럼 들지 않고 싸리눈이 내린다는 베를린의 겨울이 문득 궁금해진다.
함께 뜨거운 차를 마시고 조금 웃는다면 서로의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