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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a_ouzoud
2012. 4. 2. 07:21
어제 나는 친구들과 처음으로 돼지고기를 사러 아그달에 갔어요. 라밧에서 유일하게 돼지고기를 파는 그 정육점은 골목골목 주택가를 누빈후에야 찾을 수 있었지요. 싱싱한 고기가 아닌, 이미 한번 훈제로 익혀진 그 맛은 고기가 아닌 베이컨이나 햄에 가까운 맛이지만요. 우리 유숙소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자! 오후에 결정된 계획으로 열명이 모이고, 맥주까지 두캔씩 준비했어요. 이렇게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경우는 일년에 한두번 뿐이니까 몹시 설레기도 했구요. 고기와 야채를 산 후 택시를 타러 길가로 나왔는데 하늘에서 연기가 피어올랐어요. 아주 크고 묵직하고 하얀. 이거 어디 불이났나 마음이 덜컥했는데 이거 참, 그건 연기가 아닌 구름이었어요. 그 뒤에는 핑크색 하늘이 꽉 차 있는. 아, 근데 이거 좋은 카메라를 사고 싶다. 그 감동의 반의 반도 못 느끼겠는 사진때문에 조금 아쉽고. 예전 기선이가 선물해줘서 7년도 넘게 쓴 이 똑딱이 카메라는 이제 너무 늙었구나. 이국의 정취가 콧속으로 들어와 피에 섞여 온몸을 타고 도는지, 약간은 몽환적인 기분으로 한참이나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었지요. 내가 이곳에 있구나. 유숙소로 돌아와 복작대며 다함께 고기와 맥주를 마셨고 술이 조금 부족해진 우리는 집에서 마시려고 샀던 와인도 뜯었고, 그것도 부족해져 결국 섭섭이의 창고 짐짝을 뒤져 삼분의 일쯤 남은 깔루아 한병을 찾아냈지요. 밤이 깊어 하나 둘 집으로 떠나고 서너명은 이층 방에서 잠이 들고. 살롱에 남은 우리 셋은 술기운이 알딸딸한채로 유치한 심리게임을 하며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워있는데 창밖에서 빗소리가 들렸어요. 몇달만의 비려나, 이곳에서. 기분이 좋아져 내 자리옆의 창문을 두개나 활짝열고 그대로 잠이 들었는데 새벽사이 비가 그치고 새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서너시간을 채 자기도 전에 눈을 떠 버렸어요. 가만히 누워서 열린 창문너머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듣고 아침햇살을 느끼고 건너편 소파에서 잠든 동생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행복해져 눈물이 고였지요. 일년반이나 지나서야 내 마음은 이제 더이상 한국을 찾아가지도 않고 아침의 새소리에 감동받을 만큼 강해지고 예뻐진것이에요. 그렇게 다 흘러가더라구요.
2012.03.31.라밧,아그달.